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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바빙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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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헤르만 바빙크는 1854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개혁주의 신학자이다. 그는 캄펜 신학 학교와 라이덴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캄펜 신학 학교 교수를 거쳐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바빙크는 동시대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 벤저민 워필드와 비교되며, 신학 방법론으로 종합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그의 신학은 삼위일체론, 계시론, 신론, 인간론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저서 『개혁교의학』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바빙크는 신학적 깊이와 폭넓은 연구로 평가받지만, 그의 신학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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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바빙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바빙크 {{circa|1913}}
바빙크
존칭 접두사성직자
이름헤르만 바빙크
출생일1854년 12월 13일
출생지호헤베인, 네덜란드
사망일1921년 7월 29일
사망지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정당반혁명당
배우자https://en.wikipedia.org/wiki/James_Eglinton_(theologian), 요한나 A. 스키퍼스 (1891년 결혼)
성직자 정보
종교기독교 (개혁 교회)
교회개혁 교회
학문 정보
출신 학교캄펜 신학교
레이던 대학교
학위 논문 제목성경 해석에 대한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에 대한 간결한 시연
학파신칼뱅주의
박사 지도교수얀 헨드릭 숄텐
영향을 준 인물토마스 아퀴나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아브라함 카이퍼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요한 칼빈
분야신학
세부 분야교의신학
직장캄펜 신학교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주요 저서《개혁교의학》 (1895–1901)
영향을 받은 인물루이스 벌코프
존 볼트
헤르만 혹세마
팀 켈러
아브라함 카이퍼
헨드릭 G. 스토커
코닐리어스 반틸
디르크 볼렌호븐

2. 생애와 신학 배경

바빙크는 네덜란드 호헤베인에서 태어났다. 캄펀에서 신학을 처음 공부했고, 이후 레이던으로 옮겨 더 깊이 있는 신학 공부를 했다. 아브라함 카이퍼벤저민 워필드는 바빙크와 동시대 신학자이다. 1880년 레이던 대학교를 졸업하고, 츠빙글리 윤리에 관한 논문(''De ethiek van Ulrich Zwingli'')으로 학위를 받았다.[1] 졸업 1년 후, 캄펀의 프로테스탄트 신학대학교 교의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바빙크는 정통 칼뱅주의 신학자로서 면모를 보여주는 많은 글을 썼다. 바빙크는 성경의 유기적 영감설을 주장했고, 그의 신학은 코닐리어스 밴틸, 루이스 벌코프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2. 1. 출생과 초기 생애

헤르만 바빙크는 1854년 12월 13일 네덜란드 호게베인에서 태어났다.[1] 그의 아버지 얀 바빙크(1826–1909)는 독일 출신으로, 신학적으로 보수적이고 교회적으로 분리주의적인 개혁파 교회(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의 목사였다.[1] 바빙크는 고등학교 졸업 후 1873년 캄펜 신학 학교에 입학했지만, 1년 후 캄펜에서의 교육을 마치고 라이덴으로 옮겨 추가적인 훈련을 받았다.[1] 그는 학생 저널 노트에 그 당시 라이덴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Johannes Henricus Donner|요하네스 헨드릭스 도너nl 목사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학업을 옮기기로 결심했다고 기록했다.[1] 그는 요하네스 숄텐과 아브라함 퀴넨과 같은 저명한 교수들에게 사사받았으며, 울리히 츠빙글리의 윤리에 관한 논문을 완성하여 1880년 라이덴 대학교를 졸업했다.[1]

2. 2. 신학 수업과 교수 임용

바빙크는 캄펀에서 첫 신학교를 다녔고, 이후에 레이던으로 가서 더 깊은 신학 공부를 했다. 바빙크와 동시대 신학자로는 아브라함 카이퍼벤저민 워필드가 있다. 바빙크는 레이던 대학교에서 1880년에 졸업하였고 졸업 논문은 츠빙글리 윤리에 관한 논문이었다(''De ethiek van Ulrich Zwingli'').[1] 1년 후, 캄펀의 프로테스탄트 신학대학교의 교의학 교수로 부름을 받게 된다.[1] 그는 학생 저널 노트에 그 당시 라이덴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Johannes Henricus Donner|요하네스 헨드릭스 도너nl 목사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학업을 옮기기로 결심했다고 기록했다.[1] 그는 요하네스 숄텐과 아브라함 퀴넨과 같은 저명한 교수들에게 사사받았다.[1]

캄펜 신학 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또한 헤르폼데 케르크에서 이탈한 정통 칼뱅주의자들이 형성한 교단을 도왔다.[1] 이 탈퇴 운동은 "아프스체이딩"(분리)이라고 불렸으며, 이후 아브라함 카이퍼의 지도 아래 헤르폼데 케르크를 떠난 두 번째이자 더 큰 분리 운동, 즉 "돌란티"(불평)와의 합병을 도왔다.[1]

2. 3.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 교수

아브라함 카위퍼의 지도 아래 암스테르담에 설립된 자유 대학교(VU)는 모든 분야에서 개혁주의 학문의 보루가 되도록 의도되었다. 자유 대학교는 성직자 훈련을 위한 신학부를 포함하여, 캄펀 신학교와 달리 국가와 모든 교파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학은 수십 년 동안 VU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래서 바빙크는 VU 신학부에 처음 초청받았을 때, 독립적인 환경에서 신학 연구와 관련된 내용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장점을 따져보아야 했다. 같은 신학부에 카위퍼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상당히 붐빈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여러 번 아브라함 카위퍼의 암스테르담 초청을 거절한 후, 마침내 바빙크는 카위퍼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1902년, 그는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교에서 카위퍼의 뒤를 이어 신학 교수가 되었다. 카위퍼는 다른 업무들을 맡게 되었고, 자신을 대체할 최고의 인재를 원했다. 그리하여 바빙크는 이미 다권본 『개혁교의학』의 초판이 출판된 상태에서 대도시로 이주했다. 그는 훌륭한 자격과 존경을 받으며 도착했다. 그는 남은 교직 생활을 VU에서 보냈다. 1906년에는 네덜란드 왕립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3] 1911년에는 네덜란드 의회 상원의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80년 동안 지속된 "학교 전쟁"이 모든 학교에 대한 정부 지원이 허용되면서 종식될 때까지, 개혁교회 신자들이 국가의 재정 지원 없이 자체적인 기독교 학교를 짓도록 격려하는 데 기여했다.

2. 4. 동시대 신학자들과의 관계

바빙크는 아브라함 카이퍼벤저민 워필드와 동시대 신학자였다.[1] 바빙크와 카이퍼는 종종 비교되는데, 첫 번째 전기 작가인 J. H. 란트베어는 바빙크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카이퍼는 플라톤적인 정신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란트베어에 따르면 바빙크는 명확한 개념을 중시했고, 카이퍼는 풍부한 아이디어를 중시했다. 또한 바빙크는 역사적으로 주어진 것을 가지고 귀납적인 사고방식으로 작업한 반면, 카이퍼는 직관을 통해 연역적인 사고방식으로 사변을 진행했다.[4]

바빙크와 카이퍼의 사상 차이 중 하나는 "공통 은총" 교리와 "대립" 교리의 대조로 나타난다. 바빙크는 공통 은총을 강조했고, 카이퍼는 대립을 강조했다.[4] 야콥 클라프비크의 저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1986)는 두 입장을 비교하며, 네덜란드 개혁 교회(GKiN)와 그 회원들로부터 파생된 신-칼뱅주의 기독교 사회 운동에서 두 개의 상호 연관되고 논쟁적인 전통을 지칭한다.[4]

3. 신학 방법론

헤르만 바빙크는 종합적인 방법(Synthetic Method)을 사용한다. 그는 교의학의 방법(Methode der Dogmatiek)에 관하여 성경, 신조, 그리고 기독교적 의식의 3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바빙크는 계시인 성경이 신학 방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 세 요소가 종합적인 방법으로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합적인 방법은 신학적 방법 혹은 권위의 방법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성경에 나타난 신적인 자기 계시로부터 신학을 도출하는 방식이다.[14]

헤르만 바빙크의 교의신학 방법, 원리 및 특징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얀 베인호프는 19세기 철학의 바빙크와 개혁파 교의학자라는 "두 바빙크" 가설을 제시하며, 그의 사상에서 유기체주의 채택을 근거로 들었다.[4] 제임스 에글린턴은 이 가설을 반박하며, 유기체주의가 바빙크에게 삼위일체에 기반한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나타내는 신학적 범주이며, "내적 삼위일체는 외적 유기체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5] 브루스 패스는 다시 이 주장을 반박하고, 베인호프의 진단을 재구성하며 바빙크의 유기체주의가 독일 관념론F.W.J. 셸링에서 기원한다고 주장했다.[6] 유기체주의는 바빙크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신학자 기슬레 존슨 등 당시 다른 신학자들에게서도 나타나는 중요한 개념적 장치였다.

다른 연구들은 바빙크 사상의 중심을 은혜가 본성을 회복한다는 구조로 파악한다. “기독교의 본질은 아버지의 창조가 죄로 인해 파괴되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회복되고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왕국으로 재창조된다는 사실에 있다.”[7][8] 바빙크의 관심은 삼위일체적이고, 개혁적이며, 유기적인 세계관을 통해 철학적 이원론을 극복하는 것이었고, 개혁 기독교 교회 목사로서의 고백적인 입장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8]

바빙크는 교의 신학을 사상과 실재의 기초에 기반한 과학적 활동으로 여겼으며, 그의 교의학적 저술은 조직 신학의 원리에 관한 고전적인 신학적 논의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기본 전제와 원리로부터 방법론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바빙크에게 과학으로서의 신학에는 세 가지 근본 원리가 있다. 1. 하나님과 삼위일체는 교의학의 본질적인 기초 (''principium essendi'')이다. 2. 성경은 외부 인식 원리 (''principium cognoscendi externum'')이다. 3. 성령은 내부 인식 원리 (''principium cognoscendi internum'')이다.[7]

4. 신학 사상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 사상은 그의 교의신학 연구에서 나타나는 방법, 원리, 특징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연구되었다.

얀 베인호프는 19세기 철학과 개혁파 교의학 사이에서 바빙크의 사상을 "두 바빙크" 가설로 설명하며, 그의 유기체주의적 사고를 부분적인 근거로 제시했다.[4] 그러나 제임스 에글린턴은 바빙크에게 유기체주의가 삼위일체에 기반한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나타내는 신학적 범주라고 반박하며, "내적 삼위일체는 외적 유기체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5] 이후 브루스 패스는 베인호프의 진단을 재구성하고 바빙크의 유기체주의가 독일 관념론F.W.J. 셸링에서 기원한다고 주장하며 에글린턴의 주장을 반박했다.[6] 유기체주의는 바빙크뿐만 아니라 기슬레 존슨과 같은 당시 다른 신학자들에게서도 나타나는 중요한 개념적 장치였다.

다른 연구들은 바빙크 사상의 중심을 '은혜가 본성을 회복한다'는 구조로 파악하려고 시도했다. 즉, "기독교의 본질은 아버지의 창조가 죄로 인해 파괴되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회복되고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왕국으로 재창조된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다.[7][8] 바빙크는 철학적 이원론을 극복하고 삼위일체적이고 개혁적이며 유기적인 세계관을 제시하는 데 관심을 가졌으며, 개혁 기독교 교회 목사로서의 고백적인 입장을 견지했다.[8]

4. 1. 계시론

교의신학자인 바빙크는 인간의 사고 범주를 제1원리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재정립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이는 바빙크에게 있어 가장 광범위한 인식론적 범주가 계시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바빙크에게 있어 모든 것, 심지어 주관적인 자아의 능력까지도 하나님을 계시하며, 따라서 하나님을 그 주요 지표로 삼아야 한다. "계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중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 주변부는 창조의 가장 먼 끝까지 확장된다... 세상 자체가 계시에 기초하며, 계시는 모든 형태의 존재의 전제, 기초(grondslag), 비밀(geheim)이다."[9] 바빙크는 이것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창조와 관련된 개별 주체를 통합하는 계시의 '유기적' 관점으로 간주하며, 존재론과 인식론을 통합하는 웅장한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제시한다.[7][10]

4. 2. 신론

헤르만 바빙크는 신칼뱅주의 운동의 일원으로서, 개혁신학에 기반한 신론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높은 견해를 가졌다. 바빙크에게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은 피조물과 범주적으로 구별된다. 즉, '무한한 질적 구별'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구별은 무한과 유한, 영원과 시간, 존재와 생성, 전부와 무 사이의 심연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아무리 조금 안다고 해도, 가장 희미한 개념은 그가 모든 피조물 위에 무한히 높이 계신 존재임을 암시한다."[7] 따라서 바빙크에게 하나님 본성을 고려하는 첫 번째 범주는 이해 불가능성과 신비이다. "신비는 교의학의 생명선이다."[7]

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분을 매개적으로나 피조물을 통해 소진적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은 그 존재에 대한 뿌리 깊은 감각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 지식은 그들 자신의 탐구와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연과 역사, 예언과 기적, 평범한 방법과 특별한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지식 가능성은 잠시라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리석은 자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없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눈을 뜬 자들은 모든 방향에서 그분의 존재,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증거하는 것을 깨닫는다(사 40:26; 행 14:17; 롬 1:19-20).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영생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요 17:3; 20:31).영어[7]

다시 말해, 바빙크에게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생각은 그분을 계시하는 유한한 현실과 연결되어 있으며, 존재론과 인식론의 연관성을 이룬다.

바빙크는 하나님의 존재 증명이 하나님의 존재와 계시를 불필요하게 제한하며, 앎의 근본적인 가정을 뒤집는다고 본다. "증명들은 증명으로서 근거가 아니라 믿음의 산물이다." 칼뱅의 말을 되뇌며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믿는 자에게 모든 것이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며, 온 우주는 그분의 완벽함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주의 원자 하나에도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곳은 없다."[7]

칼뱅의 말을 다시 되뇌며, 바빙크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적응'의 언어를 사용하며, 적응의 개념을 확장하여 하나님을 반영하도록 창조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언어를 포함하여, 인간화된 것이라고 여긴다. "…하나님, 창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근본이다. 그분은 원형이며, 창조물은 사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실제로 피조물 안에 있는 것들에서 이름을 얻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은 하나님 안에 절대적인 의미로 존재하는 것에서 이름을 얻는다."[7]

바빙크는 인간의 언어가 하나님에 의해, 신학적 표현을 위해 고안되었다고 믿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는 인간의 언어이다. 그런 이유로 그분께서 사용하는 단어는 인간의 단어이다…영어; 성경은 … 철저하게 인간화되어 있다…영어) 말씀이시며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인간화된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피조물의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피조물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 계시하셨기 때문이다영어)[7] 따라서 그는 언어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복잡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언어가 인식론적으로는 유비적이지만, 존재론적으로는 존재의 단의성을 띤다고 본다. 신학적 언어와 개념은 "사본적이거나 유비적"이지만, 우리의 모든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그분을 통해 온다… 그분의 굴복 가능성은 창조와 함께 주어졌으므로 부인될 수 없다…영어[7]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이러한 견해를 고려할 때, 바빙크는 본질과 속성에 대한 고전적인 높은 신학적 개념을 지지하며, 신의 단순성을 지지한다. "...하나님은 '단순'하시다, 즉 모든 복합성으로부터 숭고하게 자유로우시며, 따라서 그분의 존재와 속성 사이에 실제적인 구별을 할 수 없다. 각 속성은 하나님의 존재와 동일하다. 그분은 그분이 '소유한' 것이다."[7] 바빙크는 또한 하나님의 독립성, 불변성 (신학), 무한성, 그리고 통일성을 서로 관련된 개념으로 논할 것이다.

4. 3. 삼위일체론

헤르만 바빙크는 삼위일체가 신학의 본질적인 원리라고 여겼으며, 삼위일체의 통일성 속의 다양성에 따라 자신의 세계관을 구성했다. 그는 "삼위일체는 우리에게 존재의 충만함, 참된 생명, 영원한 아름다움으로서의 하나님을 계시한다. 하나님 안에도 다양성 속의 통일성, 통일성 속의 다양성이 있다. 실제로 이 질서와 조화는 하나님 안에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피조물에게서 우리는 그것의 희미한 유추만을 본다."라고 말했다.[7]

바빙크에게 신적 본질에 대한 인격의 술어는 존재론적 유비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독특하게 획득되며, 그는 신성에 대한 잘못된 인격 개념을 경계했다.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서로 다른 사람 안에 존재하는 인간 본성은 결코 완전히 그리고 양적으로 동일하지 않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구별될 뿐만 아니라 분리된다. 하나님 안에서는 이 모든 것이 다르다. 신성은 추상적인 일반 개념으로 생각될 수 없으며, 신적 인격의 외부, 위, 뒤에 있는 실체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신적 인격 ''안''에 존재하며, 각 인격 안에서 완전히 그리고 양적으로 동일하다. ... 삼위일체 고백의 영광은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통일성이 다양성을 배제하지 않고 포함한다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의 존재는 추상적인 통일성이나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충만함, 무한한 생명의 풍요로움이며, 그 다양성은 통일성을 감소시키기는커녕 최대한으로 펼쳐진다.[7]

바빙크에게 중요한 점은 하나님은 인격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격들은 한 신적 인격의 세 가지 계시적 양식이 아니다. 신적 존재는 삼위일체적이다. 그것이 바로 절대적인 신적 인격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7]

4. 4. 인간론

헤르만 바빙크는 인류가 하나님을 깊이 반영한다고 보았으며, 인류가 단순히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그리고 독특하게 그 형상 ''자체''라고 믿었다.[7]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 본질의 핵심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에 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그분의 속성과 완전성의 거울이다. 모든 피조물은 각자의 방식과 정도에 따라 신적인 생각을 구현한다. 그러나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최고이자 가장 풍요로운 자기 계시이며, 따라서 모든 창조물의 머리이자 면류관이며, imago Deila이자 본성의 전형, 즉 mikrotheosla(소신)이자 mikrokosmosla(소우주)이다.[7]

이러한 관점에서 바빙크는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극대주의적 또는 전체론적 정의를 지지한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거나'' ''갖는'' 것이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하나님의 형상''이다''"라는 생각이며, "하나님 자신이, 전적인 신성이 인간의 원형이다."[7]

바빙크는 이 하나님의 형상이 다섯 가지 능력으로 확장된다고 보았다.[7]

번호능력
1인간의 영혼
2인간의 마음 (정서적, 심리적 의미)
3인간의 도덕성과 거룩함 (원래의 의)
4인간의 육체
5미래의 복된 상태에서 인류의 사회적 완성



따라서 바빙크는 개혁 신학 전통에서 하나님의 형상 신학에 전통적으로 귀속되는 실체적 개념과, 그의 유기체적 모티프에 묶여 있는 사회적이고 진보적인 인류학적 개념을 융합하여, "인간의 운명"이라는 주제에 별도의 장을 할애했다.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의 형상은 너무나 풍성하여,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인간이라 할지라도 한 개인 안에서 완전히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은 수십억의 구성원을 가진 인류 안에서만 그 깊이와 풍요로움이 어느 정도 펼쳐질 수 있다... 오직 인류 전체, 즉 하나의 머리 아래 요약되고 온 세상에 퍼져 있는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예언자로서,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장으로서, 땅과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는 통치자로서, 오직 인류만이 완전히 완성된 형상, 하나님의 가장 분명하고 인상적인 모습이다.[7]

5. 저작

헤르만 바빙크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주저로는 ''개혁교의학(Gereformeerde Dogmatiek)'' 4부작이 있다. 이 책은 네덜란드에서 여러 판본으로 출판되었으며, 존 브리엔드(John Vriend)에 의해 ''Reformed Dogmatics''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번역되었다.[11] 한국어 번역본으로는 박태현 역의 ''개혁교의학''(총 4권, 부흥과개혁사, 2011)이 있다.

바빙크의 다른 주요 저서로는 ''Our Reasonable Faith''(1909), ''Philosophy of Revelation''(1909), ''The Christian Family''(1912), ''The Last Things''(1996), ''Essays on Religion, Science, and Society''(2008) 등이 있다.

바빙크의 저작들은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로도 번역되었다. 그의 신학 사상을 연구하는 논문들도 다수 발표되었다. 김재윤은 바빙크의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을, 박상봉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죄'에 대한 이해를, 변종길은 바빙크와 성경의 관계를, 신현우는 공관복음서 주해를, 이승구는 삼위일체론을, 우병훈은 예정론과 언약론의 관계 및 슐라이어마허의 계시론에 대한 바빙크와 바르트의 견해를 연구했다.

5. 1. 한국어 번역 저서

출판 연도저서번역자출판사
1982『칼뱅과 일반 은총』성혜수산소출판부
1983『헤르만 바빙크의 신학의 원리: 신학서론』차영배총신대학교
1984『신도를 위한 개혁파 조직신학』성혜수산소출판부
1984『하나님의 큰 일』김영규기독교문서선교회
1992『개혁주의 신론』이승구기독교문서선교회
2004『개혁교의학 개요』원광연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1『개혁교의학』, 전 4권박태현부흥과개혁사
2015『개혁파 교의학(단권축약본)』김찬영, 장호준새물결플러스
2017『교회의 분열에 맞서』이혜경도서출판 100
2019『계시철학: 개정‧확장‧해제본』박재은 역‧해제다함
2019『기독교 세계관』김경필다함
2020『찬송의 제사: 신앙고백과 성례에 대한 묵상』박재은다함
2020『설교론』신호섭다함
2021『교회를 위한 신학』박태현다함
2021『일반은총』박하림다함
2023『헤르만 바빙크의 성도다운 성도』박재은다함


참조

[1] 웹사이트 Herman Bavinck https://wscal.edu/re[...] 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 2020-12-26
[2] 웹사이트 Dutch Inspiration for Tim Keller https://bavinckinsti[...] Bavinck Institute 2020-12-26
[3] 웹사이트 Herman Bavinck (1854 - 1921) http://www.dwc.knaw.[...] Royal Netherlands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2015-07-26
[4] 서적 Inspiratie et Revelatie: De openbarings en Schriftbeschouwing van Herman Bavinck in vergelijking met die der ethische theologie Buijten & Schipperheijn
[5] 서적 Trinity and Organism: Toward a New Reading of Herman Bavinck's Organic Motif Bloomsbury T&T Clark
[6] 논문 Trinity or German idealism? Reconsidering the origins of Herman Bavinck's organic motif 2023
[7] 서적 Reformed Dogmatics Baker Academic
[8] 서적 Restored to Our Destiny: Eschatology & the Image of God in Herman Bavinck's Reformed Dogmatics Brill
[9] 서적 Philosophy of Religion Hendrickson
[10] Dissertation Organic Knowing: The Theological Epistemology of Herman Bavinck
[11] 웹사이트 Herman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I inhoud http://www.neocalvin[...]
[12] 웹인용 Herman Bavinck https://wscal.edu/re[...] Westminster Seminary California 2020-12-26
[13] 웹인용 Dutch Inspiration for Tim Keller https://bavinckinsti[...] Bavinck Institute 2020-12-26
[14] 서적 한눈에 보는 성경적 조직신학 도서출판 기쁜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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